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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rto pour deux voix

Category :: culture/music


Weir 선수의 새 프로그램 곡으로 Saint-Preux 것이 쓰인다는 소식에
다들 술렁인다.

이 곡이 프로그램에 쓰이리라 짐작하는 것은 아니지만
-- 물론, 심~~~~~~하게 어울려서 곤란할 정도이긴 하다. --
Saint-Preux라 하면 먼저 생각나는 곡은 단연 'Concerto pour une voix'.
(아닌가?...)
'목소리를 위한'이라는 제목 답게 Danielle Licari의 천상의 것 같은 목소리를 돋보이게 하는 scat 창법.

하지만,
딸 Saint-Preux, Clémence Saint-Preux와 Jean-Baptiste Maunier가 함께 부른 -- 그래서 'une' 대신 'deux' -- 'Concerto pour deux voix'가 더 좋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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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6 18:51 2008/06/16 18:51

으하! Silverchair has returned from hi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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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이 되어버렸다.
벌써 작년의 일인가보다!

오... 지금은 앨범 'Young Modern'으로 활동 중인데,
나는 유튭에서 좀 봤다.
여기에 뭔가 적기엔 지금 당장 아는 것이 드물다.
다시 좀 실버체어에 몸 좀 실어보고 물에 배어든 후에
언젠가 다시 슬쩍 좀 적겠다.

오래동안 못 만났으니
과거와 지금의 모습 비교 좀 해 보겠다.

자...
1995년, Frogstomp 시절이다!
March_1995--bandold60 

자... 이제
2007년, Young Modern 시절을 보자!!
December_2007--band7

(사진들은 모두 Silverchair 공식 홈페이지인 http://www.chairpage.com/으로부터 가져 왔다.
마이스페이스에서 친구하세요. 헛헛헛헛...)

그냥 지나가면 서운하니
가장 먼저 기억나는 옛 곡들 중 하나인 Ana's Song (Open Fire)를 아래에.

Please die Ana
For as long as you're here we're not
You make the sound of laughter
and sharpened nails seem softer
And I need you now somehow
And I need you now somehow

Open fire on the needs designed
On my knees for you
Open fire on my knees desires
What I need from you

Imagine pageant
In my head the flesh seems thicker
Sandpaper tears corrode the filth

And I need you now somehow
And I need you now somehow

Open fire on the needs designed
On my knees for you
Open fire on my knees desires
What I need from you

And you're my obsession
I love you to the bones
And Ana wrecks your life
Like an Anorexia life

Open fire on the needs designed
On my knees for you
Open fire on my knees desires
What I need from you
Open fire on the needs designed
Open fire on my knees desires
On my knees for you


+ 자... 괜히 한 장 덧 붙이는 Weir 선수의 이번 IFS 사진.
photoshoo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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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3 07:43 2008/06/13 07:43

반가운 이름, the Party

Category :: culture/music


크아!
갑자기 Deedee Magno의 목소리가 기억나서
youtube를 뒤져보았다.
아! 역시!!
이 시대는 정말 위대하다.
구석의 짐들을 파헤쳐내지 않아도 이렇게 쉽게 1990년대 초의 영상들을 다시 볼 수 있다니!!

1992년에 처음 알게 된 'the Party'는
딱 미국맛, 십대맛이었다.
말썽까지는 아닌 적절한 힘 발산(?)에 그 정도의 바깥 세상 코웃음, 그리고 또래 끼리 멋내며 놀기... 등을
다 버무려 보여주는 그런 그룹.
성별, 인종도 다양하고.

특히 기억나는 멤버가 Deedee Magno였는데 (동양 소녀),
보컬이 돋보일 뿐 아니라 어디에선가 만만하지 않은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반해서 한동안 내 닉넴을 Deedee로 쓴 적도 있다. 히히.)
그 외에 Damon Pampolina (검은머리 백인 소년)도 인상적이었다.

웹을 뒤지니 이들의 the Party 이후를 어느 정도 추적할 수 있었는데,
Deedee Magno는 (기쁘게도!!) Miss Saigon의 Kim을 하기도 했고, Wicked를 공연하고 있기도 했다!!!!
오오...
Damon Pampolina도 또 다른 멤버였던 Albert Fields와 함께 이쪽 활동을 재개했음을 알 수 있었다.
Deedee Magno나 Damon Pampolina가 모두 나와 같이 1975년생들이었던 것도 기억했다.
Deedee Magno(이제는 결혼하여 Deedee Magno Hall을 이름으로 쓴다 한다.)는 계속하여 좀 더 관심을 가질 것이고, Damon Pampolina도 가끔 확인하고자 한다.

the Party의 한창 시절 대표적이었던 곡들 세 개를 첨부한다.
(새로 발견한 Web 용 mediaplayer도 시험해 볼 겸. 핫핫.)

Free

In My Dreams

That's Why

이야...
나 아직도 이 가사들 다 외고 있어! 하하하하!!

아...
이들이 미키마우스클럽인 것은 몰랐던 사실이었다.
역시... 대단한 미키마우스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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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1 00:35 2008/06/01 00:35

Ball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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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딱 싫어하는 것이 발라드'라고 생각해왔는데,
따져 보니 그렇지 않더라.

좋아하는 이 (Muse 등)의 앨범에 간간이 보이는 곡들은 물론 마음에 드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들을 예외로 하더라도.
윤시내씨의 '열애', 패티김씨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과 같은 대!단!히! 좋아하는 곡들이 있단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싫어하는 발라드 곡들은 무어던가?
ㅂㅈㅅ씨, ㅇㅅ씨, ㅅㅅㅎ씨, ㅇㅅㅎ씨, ㅅㅅㄱ씨, ㅈㅈㄱㅌㅍㄱ ...
이루 말 할 수 없이 많네;

발라드도 몇몇 하위분류가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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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6 21:54 2007/10/16 21:54

내가 미쳤구나!! Pentaport Rock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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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없게 놓칠 뻔 했쟎은가!!

막연히 아직 안하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MUSE가 내일 - 마지막 날 - 이다!!!! (으앗!!)

pentaport

내일 뭐하냐고 놀아달라 조르는(;;) 천생연분군!
내일 이거야!
...라고 생각하고 보니
아방이가 저 모양이라 란트라 몰고 갈 생각에 기운 빠지고.
Muse 외에 내 분위기가 그다지 많지 않고... -_-
(그래도 Ash도 있고..., 어제나 오늘보다 훨씬 내 취향이네.)
그러다 보니 88천원이 맘에 안드는게다.
바쁘지라도 않으면 기꺼이 지불할 것인데, 시간까지 지불한다고 생각하니...

아...
도야, 넌 안 가니?

건 글코,
2007년에는 뮤즈를 두 번이나 만나는구나!!!!
아아아아아아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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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8 17:48 2007/07/28 17:48

영화 아마데우스,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에 관한 게시물

Category :: culture/music


'내 지식이 옳은가' 싶어 검색을 좀 하다가,
가져다 두고 싶은 글이 있어 (일단 무단으로-_-;;) 복사해 왔다.
출처는 MBC의 PD 이채훈님의 홈페이지.

http://user.chollian.net/cgi-bin/ics/ics.cgi?id=ych1013&db=music1&action=read&num=20&vnum=16&&page=4&ftype=0&fval=&backdepth=1

"영화 <아마데우스> 신화와 진실" - 이채훈(PD, MBC, 시사교양)
                             1부
  (불 꺼지면 해설 없이 시작)
1. (LD)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G단조 K.183 1악장  (9분)
  Leonard Bernstein 지휘 Wiener Philharmoniker
* 도입 : 범상한 사람들의 대표(챔피언) 살리에리가 천재 모차르트에 대해 갖는 찬탄과 질시의 이중적인 의식. "신은 왜 이런 추잡하고 천박한 놈을 자기의 도구로 삼으셨을까?" 영화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전기적 사실에 대한 철저한 스터디를 바탕으로 했지만 어디까지나 문학적 상상의 결과였다. 영화 속의 묘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살리에리는 누구인가? Antonio Salieri (1750. 8. 18∼1825. 5. 7) : 40곡의 오페라(아르미다, 폴스타프, 세미라미데 포함) 작곡. 1788년 비인 궁정악장 취임, 모차르트 생전에는 모차르트보다 높은 사회적 대우를 받는 음악가였음.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의 스승. 베토벤은 살리에리로부터 노래 작곡법과 이태리어 가사 활용법을 배웠음. 베토벤은 하이든보다는 살리에리를 자기의 스승으로 여겼다. 1809년 살리에리를 방문했다가 출타 중임을 알고 베토벤이 남긴 메모에는 '당신의 제자 베토벤'이라고 쓰여져 있었음. 반면 베토벤은 "나는 하이든한테서는 아무 것도 배운 게 없다'고 말한 바 있다.
 15살 때 고아가 됨.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부속성악학교에서 배웠다.  그 곳 궁정악장 가스만에게 작곡을 사사했다. 1766년 가스만과 함께 비인에 갔고, 70년에는 여행중인 가스만을 대신하여 비인 궁정극장의 지휘를 맡기도 했다. 74년까지 9곡의 오페라를 작곡. 74년 가스만이 별세한 후는 비인 궁정작곡가 및 이탈리아 오페라 지휘자가 되었다. 75년 Theresia Helferstorfer(1755-1807)과 결혼, 8명의 자녀(7녀1남, 딸 둘만 남음).
 77년 대표적인 오페라 Tarare를 파리 공연을 위해 작곡. 78년 이탈리아에 가서 베네치아, 로마, 밀라노 등 각지에서 자작의 오페라를 공연하였다. 이 무렵부터 의식적으로 글룩의 오페라 양식을 흡수하게 되었다. 1788년 빈 궁정악장이 되었으나 1790년 이후는 오페라 지휘를 그만두고 궁정합창단 지휘에 전념하였다. 1818년까지 <음악예술가협회>의 지휘자를 겸임하였다. 24년에 은퇴. 그는 빈 악단의 중진으로서 젊은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하이든, 베토벤, 슈베르트 등과는 친구 관계였지만 모짜르트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독살설까지 유포되었으나 이는 사실무근이다. 임종을 앞두고 강력히 부인할 필요 느꼈다고. 40곡이나 되는 오페라는 독일풍으로 씌어졌고 선율 및 극적 표현이 뛰어나며 특히 성악처리가 훌륭하였다.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그의 오페라는 'Axur'라는 작품. 오페라 외에도 미사, 오라토리오 등의 종교음악, 기악곡도 남겼다. 이 분의 형 Fransisco도 작곡가였음.
2. (영화 VHS) 맨 앞 부분(K.183 나오는 대목) + 살리에리 독백(K.361 설명) (3-4분)
 * 감상곡 소개--> 살리에리의 독백으로 대신함
3. (LD : Track 3-4) 모차르트 세레나데 Bb장조 <그란 파르티타> K.361 중
  3악장 아다지오와 4악장 메뉴엣 (11분)
- Frans Brueggen 지휘 Orchestra of the 18th Century
 * 감상곡 소개 --> 1773 가을 비인을 잠시 방문했을 때 작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만나기 전에 쓴 작품. 주제는 살리에리의 오페라 <La Fiera di Venezia> 중 'Mio      caro Adone'   
4. (CD) 모차르트 작곡 살리에리 주제에 의한 6개의 변주곡 G장조 K.180 (7분)
  피아노 : Walter Gieseking
* 해설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살리에리는 살인범인가?>
  독살설 첫 언급한 공식 기록 : 1791. 12. 31 Berlin의 한 신문 "모차르트는 죽었다. 그는  프라하에서 돌아올 때 이미 앓고 있었다. Dropsy에 걸려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비인에서 죽었는데, 시신이 부어 있었기 때문에 그가 독살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살리에리는 독살설 부인. 1823년 10월 베토벤의 제자인 Ignaz Moscheles가 비인 방문 중에 살리에리 만남 (Alservorstadt 교외의 종합병원) : "내가 곧 죽을 거라는 게 분명하지만, 내 명예를 걸고 얘기하겠네. 내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그 터무니없는 소문 말일세. 아니야, 악의로, 순전히 악의로 꾸며낸 얘기야. 모셸레스, 세상 사람들에게 말해 주게. 곧 죽어 갈 늙은 살리에리가 이렇게 얘기했다고 말일세..."
  전기작가 Hildemeier도 독살설 부인 : 얼마 뒤인 그해 11월 살리에리는 자살 기도하지만 실패. "1825년 5월 사망 직전 그가 독살을 시인했다는 설이 있으나 그가 이런 얘기했다면 미쳐서 한 소리겠지. 하지만 그는 미치지 않았다. 따라서 믿기 어려울운 얘기인 듯...",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경쟁심과 갈등은 문학의 산물이다. 살리에리는 사회성이 있는, 타협적인 인물이고, 진지한 음악인으로 베토벤과 슈베르트와 리스트의 스승이었다." (Hildemeier가 쓴 전기)
  부인 콘스탄체의 증언 (1829년, 전기작가 Novello와의 인터뷰) : 모차르트는 죽기 전 몇 주 동안 자기가 독을 먹은 것 같다고 몇 차례 얘기했다. "누군가 내게 aqua tofana를 먹였다" (참고 : aqua tofana : 서서히 효력을 내는 맹독성 약물. 17-18세기에 흔했음. Teofania di Adamo라는 발명자 이름 따서 지음)
   아들 칼 토마스의 증언 : "아버지의 시체가 부풀어 오른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독살설을 입에 올렸는지는 불분명." "살리에리의 아들은 우리 아버지가 했다는 말과는 달리 (독살설)을 믿지 않고 있다." Mary Novello와의 인터뷰(1829)
  유족들의 증언에 대한 해석 : 시간이 흐르면서 독살설은 사라졌으나  "모차르트 자신이 독살로 생각했다"는 콘스탄체의 증언으로 독살설은 1820년대에 되살아남. 그러나 살리에리는 1781 모차르트가 비인에 도착했을 당시 이미 확고한 명성을 가진 요셉 2세의 신임을 받는 궁정 음악가. 1985년 복원된 오페라 <Les Danaides>는 훌륭한 작품. 그러나 살리에리는 진부한 음악가에 불과하고 모차르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는 게 후세의 평. 아무튼 1781-1791 시기에 살리에리의 지위는 모차르트에 비하면 확고하고 탄탄했다. 모차르트 입장에서 볼 때 살리에리는그는 가시같은 존재였다. 끝없는 음모로 모차르트의 음악을 필요 이상을 음해하여 비참하게 만들었다. 신기하게도 여러 증언이 일치하는 점은 살리에리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차르트를 실제로 질투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Hildemeier의 전기 172-173)  비인의 언론인 Johann Schickh의 결론 : "내기를 해도 좋다. 살리에리의 말이 맞다. 모차르트가 죽은 상황을 종합하면 분명하다."
  베토벤도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베토벤은 살리에리 존경했으나 독살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미상. 조카 칼 :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였다고 확신을 갖고 얘기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이 있다." 제자 안톤 신틀러 : "살리에리는 파멸했다. 그는 자기가 모차르트에게 독약을 먹였고 모차르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다. 이것은 '사실'이다. 왜냐, 그는 고백하기를 원하고 있으니까."  
5. (영화 VHS) 살리에리가 'Requiem' 받아 쓰는 장면 / 장례식 장면 (3분)
 영화 속의 이 장면은 완전한 허구. <레퀴엠>을 주문한 사람은 Walsegg-Stupach 백작. 그는 자기 젊은 아내의 장례식을 위해 이 곡을 의뢰했다. 자기 작품인 것처럼 장난치기 위해 익명으로 의뢰했으며, 검은 바지에 회색 코트를 입은 메신저는 비인 시장의 아들이자 Stupach네 가정음악회에서 늘 연주하던 Anton Leitgeb이라고 함. Lacrimosa까지 총보 완성. 나머지 스케치는 제자 Su"ssmayr가 완성.
 그렇다면 사인은? 하이든의 전기를 쓴 이태리의 작가 Siuseppe Carpani : "모차르트가 독살됐다고? 증거가 있는가? 없다. 모차르트는 infectious rheumatic fever에 걸려 죽었고 그 시기에 다른 사람들도 이 병에 걸려 죽은 사람이 많다. 두 名醫 Closset과 Sallaba의 진단이 근거없는 얘기란 말인가?" 최종적인 사인은 Uremic Coma였다고 후세의 의학자들 의견 일치. 몇 가지 병의 마지막 단계를 일컬음. 수은 독살이  이 증상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 어떤 사람은 severe miliary fever, 또는 rheumatic inflammatory fever가 사인이었다고도 함.
   "수은 독살설은 19세가 말까지도 남아 있었다." --> 푸시킨의 장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1830), 이를 대본으로 한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오페라(또는 음악 심리극) <모차르트와 살리에리>(1897)'...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독살설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위독한 줄 알면서도 과로를 유도하여 그의 죽음을 앞당기려는 속마음을 드러낸다. 마지막 고해에서조차 살리에리는 자기가 살의를 갖고 있었는지 밝히지 않는다.
(참고 : Rimsky-Korsakov's 'Mozart and Slieri', a psychological musical drama(1897). In this work Rimsky-Korsakov quotes several tunes of Mozart. One, 'Batti batti o bel Masetto' from Don Giovanni, and parts of Requiem D minor including Lacrimosa, and a piano work, which I guess, is Mozart's original composition but the title or Kochel number I could not tell. In the drama Mozart is supposed to play this tune, so I think it IS Mozart's work, but I don't know what it is.
Anyway, this drama served as an inspiration of Peter Schaffer's play 'Amadeus' and which was followed, after considerable transformation, by the scenario of famous film 'Amadeus'.
Following is the explanation of the work 'Mozart and Salieri' in the CD (Label : Fidelio, Stoyan Angelov conduction Bulgaria Nat'l Radio Symphony Orch, etc) :
Pushkin's tragedy 'Mozart and Salieri', which served Rimsky Korsakov as a model for this opera , is distinguished by its clarity and conciseness of its exposition. It depicts the last few hours of Mozart's life - his poisoning by Salieri. The author drew his inspiraton from legend, according to which Salieri - as is well known, caused Mozart much anguish - poisoned him. The legend is perpetuated in the more romantic biographies of Mozart.
Rimsky-Korsakov follows Pushkin exactly, the first act being built around Salieri's two monologues, with two scenes depicting Mozart and Salieri interposed, and Mozart improvising on the piano in a central episode.
The second act has a beautiful and expressive introduction constructed around the lyrical theme of Mozart's piano improvisation, and the following dialogue recounts the story of the mysterious man in black, who gave Mozart an order to compose a Requiem. Salieri tries to distract Mozart and mentions the name of Beaumarchais. This raises the unexpected question "Is it true Beaumarchais has poisoned somebody?" followed by Mozart's remarkable phrase : "Beaumarchais was a genius..  Geniality and felony are incompatible."
After drinking the poison Mozart plays a fragment of his Requiem, but then he is taken ill. This tragic moments of farewell are depicted with exceptional poetry
and inner depth by Rimsky-Korsakov. The closing monologue is the logical completion of Salieri's image, leaving the question unresdued as to whether he is a genius or not.
Mozart dies, Salieri remains. However Rimsky-Korsakov    gives the image of Mozart's continuing existence through a skillfully inserted fragment of Requiem, convincing us once again of the undoubted immortality of Mozart's music)  
6. (CD : track 15, 19, 24)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일부만...)     (8분)
  Mark Ermler 지휘 Soloists and the USSR Bolshoi Theatre Orchestra
  Mozart : Alexander Fedin(tenor), Salieri : Yevgeny Nesterenko(Bass)
*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 1 (비인 정착에서 피가로의 결혼 초연까지) : 비인 정착 초기에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에 지위와 경제력에서 비할 수 없이 열악한 상황이었으며, 세속적인 면에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질투할 필요가 없는 신분이었다. 그러나 음악적으로 모차르트를 두려워 한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살리에리 쪽에서는 모차르트를 경계한 결과 일종의 '음모'를 꾸미려 했다고 짐작할 수 있으며, 모차르트 쪽에서도 살리에리에 대한 경쟁심과 경계심이 자라나고 있었음을 다음 편지로 확인할 수 있다.
  모차르트 : "뷔르템베르크 공주 일은 끝났습니다. 황제가 가로막았어요. 그는 살리에리만 좋아해요. 막시밀리안 대공은 그녀에게 나를 추천했고, 그녀는 자기가 결정할 수 있다면 꼭 나랑 하고 싶다고 했지요. 그런데 황제가 '노래 지도'가 중요하다며 살리에리를 추천했고, 그녀는 어쩔 수 없다며 아쉬워 했습니다." (1781. 12. 5 아버지에게 쓴 편지. 방종하게 지낸다고 아버지한테 혼나고 쓴 답장. 콘스탄체와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하는 내용 위주)
  아버지 레오폴트 : "보노가 죽으면 살리에리가 궁정악장이 될 거고, 슈타르처가 살리에리 자리를 메울 거고, 슈타르처가 있던 자리는 아직 후임자가 안 정해져 있다. (네가 그 자리를 노려라)" (날짜 미상)
 모차르트 : "... 공주에게 나는 '선생님'(maestro)이고 이 점, 제가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아버니는 모르실 거에요. 그녀에게 피아노 가르치는 데에 있어서는 살리에리는 제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누구'와 함께 저에 대해 험담하는 것 뿐이지요. 거의 확실해요! 하지만 황제도 저를 이해하시고, 적어도 지난번 레슨 때 공주가 제 수업을 좋아했다는 것은 확실해요... " (1782. 8. 31 아버지에게 쓴 편지. 콘스탄체와의 결혼 생활을 보고하는 내용 위주)
 전기작가 휴 오터웨이 : "살리에리는 모차르트 음악을 듣자마자 자신의 지위에 위협을 느꼈을 것" (Hugh Ottaway : Mozart p.99)
 모차르트 : "이 이탈리아 사람들은 면전에서는 정중하게 대할 거에요. 하지만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잖아요! 그 사람이 살리에리 편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서는 아무 것도 나올 게 없어요." (1783, 5. 7 아버지에게 쓴 편지)
 아버지 레오폴트 : "<피가로의 결혼>이 28일에 초연될 예정이다. (실제로는 5월 1일 초연됨). 이 작품이 성공한다면 아주 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왜냐, (이 오페라에 대해) 놀랍도록 큰 음모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 살리에리와 그의 계파가 다시 '하늘과 땅을 오가며' 준동하고 있어. 두셱이 최근 내게 말하기를, 네 동생이 이 모든 음모에 직면하게 된 것은 그의 놀라운 재능과 능력이 너무나 높이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야!"                                  (1786. 4. 18 레오폴트가 난네를한테 쓴 편지)
 대본 작가 다 폰테 : 발레에 대한 시비 등 영화 장면은 다 폰테의 회상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모차르트와 의기투합했고 대체로 모차르트 편이었다. ('Mozart' by Peggy Woodford pp.112-113에 인용된 편지. 번역 생략)
7. (영화 VHS) <피가로의 결혼> 발레 장면 및 경연 (4분)
 *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 2
  <피가로의 결혼> 초연한 시점부터 두 사람의 갈등, 정확히 말해 모차르트에 대한 살리에리의 증오가 노골적으로 증폭된 징후가 있다. 살리에리와 리기니는 오페라 작곡가로 당시 모차르트와 경쟁 관계에 있었다. 시즌 첫 공연 작품의 영예를 얻기 위한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황제는 두 오페라를 동시에 공연하여 겨루도록 했고, 결국 <피가로>의 손을 들어주었다. 모차르트는 <피가로>가 개막 작품으로 선정되지 않으면 악보를 불질러 버리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 경연에서 모차르트는 이겼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황제가 살리에리의 손을 들어주는 장면은 실제와는 반대!
  전기작가 Stanley Sadie : "1787년 1-2월 <피가로>의 프라하 공연이 대성공을 거둔 뒤 프라하의 Impressario Bondini는 가을에 공연할 새 오페라를 주문했고, 비인에 돌아온 모차르트는 다 폰테에게 새 작품의 대본을 요청했다. 다 폰테는 살리에리와 Martin y Soler(스페인 사람. Martini신부 아님)와도 대본 계약을 맺고 있었지만 <돈지오반니> 작업에 즉시 착수했다." ( <The New Grove Mozart> p.112)
  콘스탄체 (1829년, 전기작가 Novello와의 인터뷰) : "살리에리는 자기가 원래 쓰려다가 '음악적 창조의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내던졌던 <코시 판 투테>를 모차르트가 완성했기 때문에 적대감이 더 증폭됐다." 모차르트 자신도 <코시 판 투테>에 대한 살리에리의 음모 언급. "허사로 돌아간 살리에리의 음모를 모두 말해 주겠네." (1789. 12. 29 미하엘 푸흐베르크에게 쓴 편지에서) --> 그러나 독살설로 연결시키는 건 논리적 비약.
 살리에리는 위의 일이 벌어질 당시인 1788년 비인 궁정 악장으로 취임, 지위로 보나 경제적으로 보나 모차르트에 비해 계속 잘 나가고 있었다.  
  모차르트 :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에서, 내 작품에 대한 사랑에서, 그리고 나의 재능에 대한 확신에서 감히, 그러나 정중히 요청합니다. 제2 궁정악장에 취임하기를 원한다고 황제에게 말씀해 주세요. 유능한 궁정악장 살리에리는 종교음악 양식에 한번도 헌신한 바 없는 반면 저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이 스타일의 음악을 익숙하게 다루어 왔다는 점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1790. 5  모차르트가 비인의 프란츠 대공에게 쓴 편지. <Letters of Mozart>, selected and edited by Hans Mersman)
 (감상곡 설명 : 스토리와의 연관성 생각하지 말고 그냥 듣기로!)
8. (LD)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 3막 발췌
  (산들바람의 노래, 결혼식 장면)                        (12분)
  Peter Sellars 연출, Craig Smith 지휘 Wiener Symphoni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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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불 꺼지면 영화부터...)
9. (영화 VHS) : 모차르트가 살리에리를 멸시하고 모욕하는 대목 모음 (3분)
*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 3 : 1786년 초 모차르트의 가극(Singspiel) <극장지배인> K.486이 완성됐다. 쇤부른 궁의 오란제리에서 궁정 작곡가 살리에리의 작품과 함께 초연.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 총독의 방문을 계기로 경연.  이 경연은 살리에리 승리로 끝났음. 상금 모차르트는 50 ducats, 살리에리는 100 ducats. 모차르트는 일반 악사들과 똑같은 개런티를 받았다고 함. Harnoncourt의 재미있는 CD가 있음.
10. (CD : track 7, 11) 모차르트 <극장지배인> 발췌    (9분)
   Karl Boehm 지휘 Staatskapelle Dresden / 또는 Harnoncourt 지휘
지휘자 Harnoncourt : "Mozart's Schauspieldirekor and Salieri's Prima la Musica were composed for the same occasion. Both were commissiobed by the emperor Joseph 2 and dealt with the same subject - the creation of an opera and the establishment of an opera company. Both works had their premieres on 7th February 1786 in the orangery at Schoenbrun. Just as the main topic of the two little operas highlights and most cunningly parodies the competetion between rival singers, so these two works represent in themselves a competetion unique in the history of music theatre. By imperial decree the newly created German opera, the 'Singspiel', pitted itself, as it were, against the Italian opera buffa to prove its viability. Salieri had an advantage in that his librettist (Giambattista Casti) was vastly superior to Mozart's(Stefanie). This was why the plan of the Emperor, who presumably was hoping for Mozart and German opera to win the day, failed. The orangery was a long, narrow building with small stages at each end, on which the orchestras were seated. The audience was placed between them like so many umpires. They only needed to turn round. THE EVENING WAS A TRIUMPH FOR SALIERI AND AN ITALIAN OPERA. THE SCHAUSPIELDIREKTOR WAS A FLOP."
11. (CD) 살리에리의 <Prima di Musica> 중 1 대목 (5분) - N. Harnoncourt 지휘  
   (CD 못 구할 경우)
   살리에리 작곡 플롯과 오보에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C장조 중
   1악장 Allegro Spirituoso   (7분)
 - Claudio Simone 지휘 I Solisti Veneti
 <아마데우스>에서 가장 훌륭한 장면은 <돈지오반니> 대목일 듯... 아버지에 대한 모차르트의 콤플렉스를 영화에서는 살리에리가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음. 대체로 공감할 수 있는 얘기라고 생각됨. <돈지오반니> 서곡과 '기사장의 심판' 대목 D단조의 불협화음은 <아마데우스> 영화 전편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
12. (영화 VHS) <돈지오반니> 피날레 (5분)
13. (DVD) <돈지오반니> 하이라이트 (15분)
- 에리히 클라이버 지휘 빈필. 안톤 데르모타의 <Il mio tesoro>, 리자 델라 카사의     <Mi tradi qu'el alma ingrata>, 그리고 기사장의 심판 장면.
*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결국 화해했는가? 모차르트의 마지막해인 1791년 두 사람은 화해했는가? 모차르트는 비인의 궁정에서 멀어졌고 연주자로서 대중에게 잊혀지기 시작했다. 황제 요젭 2세가 죽은 뒤 모차르트는 궁정 오페라를 쓰라는 요청을 받지 못했다. 살리에리는 궁정 악장이었다. 이제 두 사람의 세속적인 경쟁은 이미 끝났는가? 그래서 더 이상의 경쟁과 반목도 불필요해 졌는가?
 전기 작가 Wolfgang Hildesheimer : "1790년 이후 모차르트는 간과됐을 뿐 아니라 냉대받았다. 바이글과 살리에리는 연주생활을 계속했지만 모차르트는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행사든 파티든... 연주자로서 생명 끝났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갈등으로 해석할 사건도 아직 남아 있었다. <황제 티투스의 자비> 작곡을 모차르트가 맡게 된 경위에 대한 증언이 엇갈리고 있는 것. 당시 대관식의 주인공이었던 레오폴트 2세는 '최고의 작곡가' 살리에리에게 이 오페라의 작곡을 맡기려 했는데 살리에리가 너무 바뻐서 모차르트를 시켰다고 알려져 있음. 그 실상에 대해 살리에리와 다 폰테는 상반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살리에리 : "이탈리아 오페라 회사 감독 가르다소니가 나를 설득하기 위해 5번이나 프라하에서 비인에 왔는데... (바뻐서 응하지 못했다)"
 다 폰테 : "레오폴트 황제 만났는데, 그가 말하기를 살리에리는 신경쓰지 말아라. 그 녀석과 카발리에리(살리에리의 애인)의 음모를 알고 있다. 살리에리는 자기네 성공 이외에는 신경을 안 쓰는 이기주의자다. 그는 너의 적일 뿐 아니라 모든 작곡가들의 적이다. 그는 나의 적이기도 하다. 왜냐, 그는 내가 자기를 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와 그의 계집을 내 극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 (모차르트에게 쓴 편지)
 그러나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작품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소탈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모차르트가 대중들로부터 잊혀지기 시작한 바로 이 시점에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즐겨 지휘하고 연주한 것이다.
 당시 음악회 포스터 : "궁정악장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1791년 4월 16, 17일 Lenten 연례연주회를 지휘했다. 첫 곡은 모차르트가 최근에 작곡한 대교향곡..." (어느 곡인지 미상. 전기작가 Robbins Landon에 따르면 40번 G단조 클라리넷 포함 version이라고... <1791, Mozart's Last Year> by Robbins Landon).
1791. 9. 6 St Vitus 성당에서 열린 대관식 미사에서 살리에리가 지휘. 레퍼토리는 모차르트의 대관식 미사 C장조 K.317, 그리고 K.337(?), Offertory Motet Splendete te, Deus K.Anh.121 (Thamos, King of Egypt K.345의 'Schon weichet dir, Sonne를 편곡한 것). 1791. 9. 8 Convent 교회에서 살리에리 지휘 궁정악사들이 다음 곡들 연주. Missa Brevis C장조 K.258 (세 곡의 대관식 미사 중 가장 짧은 곡). 1791. 9. 12 보헤미아 여왕 마리아 루이사 대관식 연주회 St Vitus 성당에서. 살리에리 지휘 궁정 관현악단 K.337과 K.317 연주.
14. (영화 VHS) 마술피리 공연 중 밤의 여왕 아리아          (3분)
 <마술피리> 공연장 분위기 : 모차르트는 장모도 공연장에 잘 모셔 갔다. 밤의 여왕을 맡은 사람은 아내 콘스탄체의 큰언니 요제파 베버였다(작은 언니 알로이지아 베버는 모차르트가 한때 좋아했었음. 세 자매가 모두 성악을 했음), 파파게노는 대본을 쓴 엠마누엘 시카네더가 맡았는데 그도 위트가 넘치는 사람이었지만 공연중에 모차르트가 그를 놀려먹은 일화 --> 모차르트는 시카네더가 노래할 때 장난기가 발동, 글로켄슈필을 치면서 노래 중 쉼표 자리에 arpeggio를 갑자기 넣어 시카네더를 놀라게 하고, 그 다음에는 일부러 안 넣어서 다시 약을 올림. 당황한 시카네더가 "조용히 해!"라고 소리치자 모든 사람이 폭소를 터뜨렸음. 당시 청중들은 파파게노가 들고 있던 종을 직접 연주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종 치는 시늉만 한 게 들통난 것. 모차르트는 대본 작업에도 참여. Pa-pa-pa... 대목은 원래 Papagona!, Papageno!였는데 모차르트의 아이디어로 Pa-pa-pa-pa...로 바꿈. 그렇다면 <마술피리>에 대한 살리에리의 실제 반응은?
  모차르트 : "어제 13일(목) 저녁 6시, 나는 살리에리와 카발리에리를 모시러 마차를 보냈고, 박스로 그들을 모시고 갔다. 그 뒤 카알과 장모를 모시러 서둘러 마차를 또 보냈다... 그 두 분이 얼마나 내게 친절했는지 모를 걸... 그들은 나의 음악 뿐 아니라 책과 모든 것을 좋아했어요. 둘은 입을 모아 얼마나 훌륭한 오페라인지 모른다고 칭찬했어요. 가장 위대한 군주를 위한 가장 위대한 축제에서 공연해도 좋겠다고...그들은 이렇게 아름답고 유쾌한 작품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여러번 보러 오겠다고 했습니다. 서곡이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 합창이 끝날 때까지 이들은 '브라보', '벨로'를 외치지 않은 곡이 없어요... 공연이 끝나고 그들을 바래다 드린 뒤 카알과 함께  Hofer네 집에서 식사를 했지요...." (10월 14일 콘스탄체에게 쓴 편지. 이하, 아들 카알 얘기)
 * 감상곡 유도...
15 (LD)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 1막 아리아 "O zittre nicht..."  (5분)
  Soprano : Gruberova  / W Sawallish 지휘 Bayerische Opera     
16. (영화 VHS) Requiem 중 Lacrimosa 장면 (3분-4분)
 모차르트 생시에 대한 마지막 증언 : "모차르트는 죽기 전날 몇몇 친구들과 Lacrimosa를 연습하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한 친구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마술피리> 파파게노의 아리아를 불렀으나 연습은 계속되지 못했다...."
 장례식 : "모차르트의 장례식은 St Marx 교회 공동묘지에서 치러졌는데, 오토 얀의 전기에 따르면 현장에 살리에리, 쥐스마이어, 반 슈비텐과 두 명의 다른 음악가(Albrechtsberger, Hofer, Lange=처남)가 참석했다. 폭풍과 눈이 내렸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 날씨는 맑고 포근했다."
 * 마지막 감상곡 : 영화 <아마데우스> 클로징으로 쓰인 곡은 피아노협주곡 20번 D단  조의 2악장 로만체... 영화에는 이 곡의 1악장, 22번 Eb의 3악장 나옴. 영화에 안 나오는 더 좋은 곡을 듣는 것도 좋을 듯...
17. (LD)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3번 A장조 1악장 (12분)
  피아노 : Zoltan Kocsis
  협연 : Jiri Belohlavek 지휘 Virtuosi di Praga

http://user.chollian.net/cgi-bin/ics/ics.cgi?id=ych1013&db=music1&action=read&num=22&vnum=15&&page=4&ftype=0&fval=&backdepth=1

"<아마데우스>, 신화와 진실 (보충 설명)" - 이근호

3월 정감에 보충하는 글.(살리에리와 모찰트)
3월 정감에 잠깐 출연하여 핸드아웃의 내용에 대하여 짧게 코멘트 한 것이지만 그 당시에 안 오신 분들을 위하여 다시 기억나는데로 올립니다.
먼저 핸드아웃에 보면 베에토벤이 "하이든에게서는 배울 것이 별로 없었다" 라고 말하였다는 부분이 있는데...
마치 하이든이 별 재능이 없다고 말했다는 오해를 줄 것 같아서 해명을 하여야 겠습니다.
하이든과 베에토벤의 나이차이는 40년이 넘습니다.  즉 거의 할아버지와 손자 뻘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세대차도 세대차이지만 음악에 대한 견해도 엄청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요계의 현실로 비유하자면 지금 우리 가요게에서 한창 뜬다는 유엔이나 베이비복스같은 애들이
"조용필, 나훈아에게서는 배울 것이 별로 없었어요" 하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또한 당시 하이든의 나이는 70세,   그럼에도 비엔나 음악계에서는 태부로서 많은 작곡 의뢰를 받고 잇엇고 "천지창조""사계" 각종 대미사곡, 런던 교향곡 등 대작을 발표할 정도로 매우 바빴습니다.
제자들에 대하여 신경을 쓸 시간이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요즘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비엔나의 젊은 음악가들은 하이든과 같은 대작곡가에게는 걍 제자라고 이름만 등록해놓고 실제 랫슨은 살리에리와 같은 이류 작곡가들에게 배우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적어도 하이든 문하 였다고 졸업장만 내보이면 취직하기도 쉬었으니까 그것을 노리고 베에토벤도 이름만 올렸을 뿐, 그 성격상 하이든 아래에서 가방모찌, 악보 사보나 하며 따라다니지는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하이든에 대한 존경은 대단하여 그의 초기 피아노소나타 사단조를 하이든에게 바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아마데우스" 영화에 보면 모찰트가 살리에리를 마치 부당하게 시샘이나 하는 매우 협량한 인물로 그리고 있는데 이것도 실상을 알면 다릅니다.
모찰트와 살리에리의 나이 차이는 불과 6세입니다. 영화에서는 마치 상당한 나이 차이가 난 것처럼 분장되었지만 실상은 거의 한 동갑입니다. 이 둘의 경력은 너무나 차이가 납니다.
모찰트의 경우는 어릴때부터 아버지의 엄격한 음악교육을 잘 받고 꼬마 연주자로서 흥행에서도 인기 짱이었지요.  실지로도 엄청난 재능을 발휘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반면 살리에리는 어릴 때에 고아가 되었고 별 음악적 재능도 없는 가난한 이탈리아 어린애였습니다.
그러다가 살리에리는 줄을 잘 서서 갑자기 엄청난 출세를 하게 됩니다.
즉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 황실의 최고 궁정 음악가 가스만에게 눈에 띄어 그의 수하가 된 것입니다.
어떤 인연으로 그에게 발탁되엇는지는 나도 모릅니다.  다만 가스만 같은 음악가는 요즘 우리나라로 말하면 "SM 기획"과 같은 "스타제조기" 등의 역할을 하고 있엇으니까 그런 스타 후보로 일단 픽업을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린 살리에리는 가난한 이탈리아 출신 고아답게 출중한 처세술과 아부를 총동원하여 이 가스만의 맘에 들었을 것이고 일약 스타로 키워졌을 것으로 생각듭니다.
아마 가방모찌 역할을 아주 열심히 잘한 것으로 생각듭니다.
가스만 이후에는 오스트리아 황실에서 마리아 테레지아 여황제의 큰 총애를 차지하고 있던 글룩의 제자가 됩니다.
그래서 글룩을 따라 파리에 가고 거기에서 바쁜 글룩 대신으로 "다나이데"를 작곡해주기도 합니다.
즉 유명한 대학교수 밑에서 충실한 조교의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보같은 조교라도 교수 밑에서 칠판 열심히 닦고 있다보면 그 후임으로 교수 자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살리에리는 곧 비엔나 궁정음악가 자기를 얻엇으니 벼락출세한 셈이지만 경과를 따지면 이러하였던 것입니다.
반면에 모찰트는?
살리에리가 잘 나가고 있을 때에 그는 잘츠부르크에서 아버지 슬하에서 꼼짝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꿈은 걍 잘츠부르크에서 고이 시골음악가로 평생을 보내도록 하는 정도였나봅니다.
허나 모찰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떠나버렸습니다.
그러나 어디로 가도 취직자리가 없습니다. 공교롭게도 당시 모찰트가 취직할만한 자리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앉아서 빈 곳이 없었습니다.
결국 프리랜서, 사실상 실업자로 비엔나로 가게 되는데 가보니까 자기와 나이가 비슷한 사람이 궁정음악가로 잘 나가고 있더라는거죠...
마치 어릴때에 이웃 친구가 국민학교 같이 다닐 때에는 코 질질흘리고 나보다 공부도 못하던 것이 어른이 되서 어느날 다시 만나니 대학교수가 되어서 방송도 잘 타고 잘나가더라... 자기는 아직도 실업자인데....
보통 사람들도 그런 경우에는 머리가 거꾸로 설 정도로 시샘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찰트가 살리에리에 대하여 시샘과 적의감을 품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감정 표출이라고도 할 것입니다.
모찰트의 심정이 이해가 가는겁니다.
살리에리가 당시 황제를 비롯하여 인기는 얻었으나 그의 음악이 대중에게 그리 크게 인정을 받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영화에서의 모찰트의 살리에리 음악에 대한 혹독한 평가는 어느 정도는 당시 시민들의 그것과도 일치하였던 것입니다.   
영화에서처럼 살리에리의 오페라 "Axur"가 황제의 치하를 받았던 것은 맞습니다.
살리에리의 음악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들러드리겟습니다만 그의 음악은 대체로 귀족들이 아무 생각없이 감상하기에 편할 정도로 평온, 무사한 것이 특징입니다.  인기에만 영합한 것이죠
무언가 신기하고 짜릿해야만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것이 없었죠.  그래서 그의 음악은 곧 잊혀지게 됩니다.   
서태지가 왜 아직도 인기입니까?  즉 그의 음악이 두루뭉실하지 않고 개성이 확확 튀고 무언가 짜릿한 것을 지금도 주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모찰트의 음악도 당시로서는 서태지의 것과 같은 충격을 귀족들에게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고 생각듭니다.
별 이슈가 없는 궁정음악가인 살리에리를 황제가 뛰워줄 수 있는 방법은...
모찰트와 음악적 경연을 크게 벌려서 센세이션을 만드는 것이죠.
또한 그런 것이 황제가 백성들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하여 관심을 돌리게 만드는 데에도 일조할 수 있고...
이번 정감에서 다룬 모찰트의 오페라"흥행사"와 살리에리의 오페라"먼저 음악을..." 의 대결은 이런 배경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 대결에서 살리에리가 승리하게 되는데 이미 짐작하시다시피 평민들의 인기를 끄는 모찰트는 왕후 귀족들의 사랑을 받는 살리에리에 대하여 심판의 편파판정을 받을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실제로도 오페라 대본 작가에서도 살리에리쪽이 훨 우수한 대본이 주어져서 모찰트보다 월등한 가운데에 경연이 치러졌던 것입니다.
두 작곡가의 경쟁심을 당시 귀족, 황제가 일부러 부추긴 점이 많습니다.
그렇게 경쟁심을 부추기고 양 진영의 대립을 첨예화하면 할 수록 흥행효과는 올라갑니다.  
마치 우리 가요계에서 일전에 베이비복스의 한 멤버를 향하여 경쟁 그룹의 지지자들이 협박 편지를 보내어 떠들석하게 하였던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런 경쟁이 치열해질 수록 뒤에 서 있는 흥행업자들과 매스컴은 돈을 버니 자꾸 양 그룹의 지지자들을 부추기는 것이죠
아마데우스 영화에 나타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대립은 현대 우리 가요계의 상황과 비유하면 아주 잘 이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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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4 21:34 2007/05/24 21:34

Anna Netrebko, Anna Mof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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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a Netrebko

DVD Opera의 시대

La Traviata

coloratura

Anna Moffo가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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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2 09:27 2007/04/02 09:27

Muse's new single, 'INVINCIBLE' - CD &amp; DVD artwork revea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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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ed by Jasper Good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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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1 10:40 2007/03/11 10:40

MUSE 첫 한국 공연 후 미디어 보도들

Category :: culture/music


팬들의 후기야 뭐 말할 것도 없다.
인터넷 신문 기사들을 검색해 보았다.

눈에 띄는 제목이 보인다.
'우리는 천재를 보았다'
조선일보 최승현 기자의 기사.

http://spn.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3/09/2007030900033.html

고작 세 명 멤버가 무대 위에 서 있을 뿐인데 그들의 손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의 힘과 카리스마는 어떤 대규모 악단보다 압도적이었다. 7일 밤 서울 잠실 체육관에서 열린 영국의 스타 록 밴드 ‘뮤즈(Muse)’의 내한공연. 두번째 곡 ‘히스테리아(Hysteria)’부터 팬들의 합창과 슬램, 점핑이 시작되며 장내는 뜨거워졌다.
크리스 볼첸홈(베이스)과 도미닉 하워드(드럼)의 안정된 연주도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이날 공연의 핵심은 바로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리더 메튜 벨라미<사진>의 주체할 수 없는 천재성이었다. 그는 일렉트릭 기타, 통기타, 키보드, 심지어 메가폰까지 동원해가며 몽환적이고 화려한 음의 향연을 선사했다. 그의 손가락은 기타 줄과 건반을 가리지 않고 무섭게 내달렸으며, 목소리는 시종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채, 음반과 다름없는 ‘품질’의 노래를 쏟아냈다.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깔끔한 외모의 그가 역동적인 동작으로 목청을 높일 때마다 팬들은 절규했다. 공연 중 10여명의 팬이 지나치게 흥분해 탈진 상태에 빠져 잠시 객석 밖으로 실려 나갔다 들어오기도 했다. ‘스타 라이트(Starlight)’, ‘스톡홀름 신드롬(Stockholm syndrome)’ 등 강렬하지만 서정적인 뮤즈의 곡들은 메튜 벨라미와 관객들 입을 거쳐 열기 띤 공연장의 빈 공간을 메워나갔다.

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기사

뮤즈, 첫 내한 공연에 7천 여 팬 열광
영국 3인조 록밴드 '뮤즈(Muse)'의 내한 공연 소식은 이미 작년부터 국내 록 팬 사이에서 '핫 뉴스'였다. 공연이 확정되기 전부터 각종 록음악 동호회에는 관련 글이 쏟아졌고, 공연 기획사에도 확인전화가 빗발쳤다.
이들에 대한 국내 록 팬의 민감한 관심은 온라인의 검색 순위에서도 감지할 수 있었다. 뮤즈는 한 포털사이트에서 기라성 같은 스타를 제치고 외국가수 연간 검색어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같은 뮤즈의 인기는 무엇보다 여타 밴드와의 확실한 차별성 때문. 거칠면서도 공간감이 풍부한 기타 사운드 및 '몽환적'인 보컬에 일렉트로닉 음악이 더해져 한 소절만 들어봐도 곧바로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의 독특한 뮤즈만의 '질감'이 탄생했다.
7일 오후 8시45분부터 1시간30분 동안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펼쳐진 뮤즈의 공연은 그동안 이들의 첫 내한을 목마르게 기다려 온 국내 록 마니아의 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한 무대였다. 음반을 거듭할수록 초기의 신선함이 떨어지고 있다는 일부 지적을 불식시키듯 특유의 판타스틱한 음악으로 여전한 위력을 과시했다.
공연은 뮤즈 멤버의 요청으로 당초 예정 시간보다 45분이나 늦게 시작됐다. 시작부터 다소 김이 빠질 수 있는 분위기.
하지만 검은 색 의상을 입은 뮤즈 멤버가 무대에 올라 첫 곡 '테이크 어 바우(Take A Bow)'로 포문을 열자 스탠딩석 등 7천여 석을 가득 메운 관객은 순식간에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곡과 비트에 따라 달라지는 환상적인 조명 아래에서 히트곡 '플러그 인 베이비(Plug in Baby)' '히스테리아(Hysteria)' '뉴본(Newborn)' 등이 이어지자 관객들은 손을 흔들고 발을 구르며 환호했다. 뮤즈 멤버들은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서울" 등을 외치며 관객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특히 팀의 리더인 매튜 벨라미는 마이크에 입을 붙인 채 흐느끼듯 울부짖는 보컬로 관객을 압도했다. 곡의 특성에 맞게 여러 대의 기타를 동원했고, 키보드 연주까지 도맡으며 '뮤즈 사운드'의 진수를 선보였다.
매튜 벨라미, 크리스 볼첸홈(베이스), 도미닉 하워드(드럼) 3인조로 구성된 뮤즈는 1999년 데뷔와 함께 영국 차트를 석권하는 등 일찌감치 록계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데뷔 음반 '쇼비즈(Showbiz)'부터 정규 4집 '블랙 홀스 앤드 레블루션스(Black Holes and Revelutions)'까지 전 세계적으로 70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할 정도로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cool@yna.co.kr

the Korea Times, by Cathy Rose A. Garcia

British Rock Band Muse Electrifies Seoul
 

British modern rock band Muse lived up to their reputation as one of the best live acts around these days, with an electrifying, nearly two-hour concert in Seoul on Wednesday evening.
Muse, composed of members Matthew Bellamy, Dominic Howard and Chris Wolstenholme, did not disappoint the 7,000 fans who flocked to the Chamsil Indoor Stadium in southern Seoul.
Howard shared some of the Muse's secrets for giving spectacular live performances, during an interview with The Korea Times at the W Seoul Walkerhill Hotel, hours before the concert.
``We always want to try to make everyone feel like they were part of the show. We didn't want the people at the back feeling like they couldn't see what was going on. ... We've always tried to give our best. We give 100, 110 percent of our energy and soul to the music and passion into what we're doing,” he said.
Howard, who plays the drums, said it is amazing to be recognized for their live performances, especially since they worked hard to expand their production and add visual elements to the show. Muse received several Best Live Act awards in the United Kingdom and Europe last year.
Muse is currently on their first Asian tour, wowing crowds in Indonesia, Malaysia, Taiwan and Hong Kong. Although the band is used to performing before thousands of screaming fans in Europe, Howard said they were still surprised at the level of intensity and excitement generated by Asian fans during their concerts.
``For us, it is incredibly exciting playing for people who have never seen us perform live before. The difference that we’ve noticed is there is a lot of really high-energy excitement. All the crowds have been so loud. People were screaming their heads off. It feels good. I’ve been told that sometimes when you’re at the front, the screaming is louder than the music," he laughed.
Howard said the members have all ``changed drastically” since they formed in Teignmouth, Devon in England in the 1990s. Since then, Muse has recorded four albums including the critically acclaimed and commercially successful ``Absolution” and ``Black Holes and Revelations.”
``I think we’ve become closer as a group. I think that’s one of the unique things about how we’ve stayed together for so long. Because we’ve always had the past to get back to, we’ve always stayed together through ups and downs. We could go back to when we were 15 and laugh about the little things,” he said.
Howard said he doesn’t know what musical direction Muse will take in the future, although the group will continue experimenting with different styles of music.
When asked which songs Muse enjoys playing live, Howard named ``Map of the Problematique” and ``Knights of Cydonia.” ``I like Knights because when you get to the ending, everyone knows what to do and that's to jump around and lose your mind,” he said.
Jumping around and losing their minds is just what thousands of energetic fans did throughout the Muse concert on Wednesday. The concert started at around 8:45 p.m., nearly 45 minutes later than originally scheduled, but the crowd didn’t seem to mind.
Deafening screams greeted Muse, as they performed ``Take a Bow,” ``Hysteria” and ``Supermassive Black Hole.” The charismatic Bellamy showed he was equally talented in singing, playing the guitar and the piano.
However, Muse concentrated solely on their performance, barely talking to the audience. Bellamy and Howard said a few words in Korean, such as ``Annyonghaseyo” and ``Saranghaeyo, Seoul, (I love you, Seoul)” which were received with loud cheers.
Muse performed 18 songs throughout the show, including ``Stockholm Syndrome,” ``Starlight,” ``Time is Running Out” and ``Knights of Cydonia.” However, some were disappointed when Muse ended the show with just one encore, leaving them longing for more.
cathy@koreatimes.co.kr

문화일보, 김고금평기자

[AM7]눈물 & 감동…심장이 멎는다
이들의 첫 내한공연 소식을 전하기 전에 먼저 ‘톤(Tone·음색) ’에 대해 말해야겠다. 과거 1980년대 록 밴드들은 톤에 대해 깊 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메탈리카나 메가데스, 헬로윈 같은 헤비메탈 그룹의 음악들은 대개 톤이 비슷했다. 물론 보컬의 경 우 고유의 차별화된 톤이 있었지만, 그래도 기타 같은 주 악기의 사운드는 톤에서 큰 특징이 없었다. 차이라면 누가 더 빨리치느 냐에 대한 것뿐이었다. 톤을 중요시하는 쪽은 오히려 재즈나 블 루스 연주자들이었다. 재즈-블루스 기타리스트 래리 칼튼의 폐부 를 찌르는 듯한 깊은 사운드만 하더라도 차별화된 톤이 주는 음 의 미학이 어떤지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90년대 후반 들어서 록 밴드들은 톤에 대해 나름의 연구를 시작 했다. 이는 기타 뿐 아니라 피아노 같은 건반악기 등에도 확산돼 앞다퉈 ‘자기만의 음색’을 확보하는데 심혈의 노력을 기울였 다.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음반을 팔아치운 ‘콜드플레이’ 나 록의 새로운 돌풍을 일으킨 ‘마룬5’ 같은 그룹들이 보여주 는 차별화된 톤(보컬, 기타, 키보드)은 현재 대중들이 가장 신뢰하 는 사운드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진다.
3인조 영국 록밴드 ‘뮤즈(Muse)’도 보컬과 기타에서 가장 차별 화된 음색을 들려준다. 각종 액세서리(전자기타의 소리를 일그러 뜨리는 장치)를 동원해도 감히 흉내내기 어려운 기타 사운드, 묵 직한 음색의 소름돋는 가창이 돋보이는 보컬, 화려하면서도 음울 한 기운이 감도는 전자음악 위주의 키보드는 21세기 록 밴드가 지향하는 톤의 교본 같다. 이 희귀하면서도 독특한 톤을 발산하 는 이들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휴머니즘’을 지향한다. 기타는 먹물을 칠한 듯 둔탁하면서도 도톰한 소리로 정상적인 맥박을 불 규칙하게 만드는 신비의 묘약같은 힘을 발휘하고, 보컬은 시종 아련한 슬픔을 배음으로 깔고 듣는 이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이들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사운드로 승부수를 띄워 흩어졌 던 록 팬들을 다시 모으고 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 99 년 첫 앨범 ‘쇼비즈(Showbiz)’가 50만장, 2001년 2집 ‘오리진 오브 시메트리(Origin of Symmetry)’가 100만장, 2003년 3집 ‘앱솔루션(Absolution)’이 200만장 등 앨범을 내놓을때마다 판 매량이 갑절씩 늘어났다.
최근 4번째 앨범 ‘블랙 홀스 & 레블레이션스(Black Holes & Rev elations)’를 내놓고 또한번 세계 록 팬들을 흥분시키는 뮤즈가 7일 오후 8시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첫 내한무대에 오른다.
일본에서 미리 본 관객들은 이들의 공연에 대한 평가를 ‘눈물’ 과 ‘감동’이란 단어로 요약했다. 그런 감정의 여운은 티]켓 발 매 40분만에 5000장이 순식간에 매진되는 ‘기록’에서도 확인됐 다. 외계인의 침략, 세계 혁명론 등 독특한 가사로도 주목받은 이 그룹의 진가는 뭐니뭐니해도 독특한 ‘톤’에 있다. 아무도 넘보지 못하는 그들만의 ‘음색’ 말이다.
02-3141-3488 김고금평기자 danny@munhwa.com

아쉬우니 사진 한 장 더!

아래의 사진은 muse.mu의 forum에서 가져온 사진이다.
(Starlight 때 1213 떼박수;; 장면!!)
어느 분께서 찍으신 것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찍으신 분!! 무단 도용이 되어 죄송합니다. 이 글 보시면 자신을 밝혀주셔요. 표시하겠습니다!!
그리고 고맙숩니당!

※ setlist는 아래와 같습니다:

Take a Bow
Hysteria
Supermassive Black Hole
B&H
Map of the Problematique
New Born
Citizen Erased
Hoodoo
Apocalypse Please (Short)
Feeling Good
Sunburn*
Assassin
Starlight
Plug in Baby
Stockholm Syndrome
Soldier's Poem
Invincible
Time is Running Out
Knights of Cydo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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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1 01:42 2007/03/11 01:42

!! MUSE Live in SEOUL 2007 !! 현장!!

Category :: culture/music




the Tears 때 FZ20군을 들고 고생을 좀 한 까닭에 (그래도 그땐 사진기가 좋아서 대박 사진을 건졌더랬다.)
이번엔, 가장 열광하고 사랑하는 MUSE이니만큼
찍어오기는 관두고 현장에서 몰입에만 열중해야겠단 생각으로
케녹스 알파7군만 데리고 갔다.
(태도와 장비의 문제로 스틸컷들은 다 완전 스으레기이. -_-)
이 공연에 침을 흘렸으나 참석하지 못한 이들을 마구 놀려주고 싶어서
현장 분위기만 살짝 느껴지도록 동영상을 짧게 잡아 왔다.
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

정말 감동적이고 기쁜 공연이었다.
놀라왔던 것은...
공연을 보는 내내 MUSE에게 고마왔다는 것이다.
그저 음악에 감격하고 열광하는 경험 이상을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잘 짜여진 공연을 계획하고 연습하고
그렇게도 열심히 공연해준 것에
정말 어마어마하게 고마왔다.
고마운 만큼, 그런 것을 받은 만큼 또 우리는 그들이 바라는 것을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불끈불끈!! 솟았다.
공감, 열광, 지지, 사랑, ...

그리고, 그 곡들을 직접 듣고 보면서,
'아 바로 이것을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었구나.' 라며
이미 알고 있던 그 곡들을 다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능력에 '천재!!!!!! 정말 고마와!! 이런 곡을 만들어줘서!!'
라며 감탄을 했다.

아... 일단 이정도만 적고...
음... 도저히 표현이 되질 않는다.
그저. 정말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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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8 13:22 2007/03/0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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